[정규재 칼럼] 혁신을 거부하는 '한국 이데올로기'

입력 2016-04-18 18:16   수정 2016-04-19 09:25

"테슬라도 알파고 열풍도 한국선 불가능한 모델

도박과 위험에 적대적인 주자학적 환경에다
기업 적대적인 경제민주화 등 반혁신 악조건 갈수록 첩첩
이런 식으론 미래 없다"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



테슬라 모델3는 전례 없는 인기를 끌었다. 세계에서 25만대의 예약을 받아냈다. 언론도 대서특필했다. 분위기에 휩쓸리는 데 정평이 나 있는 한국 언론들은 국내 자동차산업을 질타하는 기회라는 듯 더욱 치열한 보도경쟁을 벌였다. 많은 문제적 요소들은 생략됐다. 사실 모델3는 출시 시기조차 확정된 것이 없다. 1년 후라고 하지만 2017년이 아니라 2018년이 돼야 가능할 수도 있다. 350㎞로 알려진 주행거리 역시 아직 배터리 용량에 대한 기술적 확증이 없다. 일각에서는 테슬라 주가 관리 때문에 나온 머스크의 기술적 도박이라는 지적이 나왔지만 이런 사실들은 무시됐다.

테슬라는 2013년에 2만여대, 2014년에 3만5000대, 작년에 5만580대를 팔았을 뿐이다. 부채는 44억달러를 돌파해 급증하고 있고 대량으로 발행된 전환사채는 기존 주식의 가치를 심각하게 잠식할 수도 있다. 작년엔 적자만도 7억달러 이상이었다. 팔수록 손해가 커지는데 모델3에서는 더?그럴 것이다. 공매도 세력은 테슬라 주식을 노리고 있다. 테슬라를 비판할 의도는 조금도 없다. 그러나 테슬라가 만일 한국 기업이라면 이런 비즈니스 모델은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점은 지적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우선 한국 자본시장의 협소함은 기업의 위험을 담아낼 범퍼 혹은 저수지 역할을 결코 감당해낼 수 없다. 작은 벤처기업조차 정부가 돈을 태우고서야 시장이 형성되는 수준이다. 여론은 이런 비즈니스를 부정적으로 평가할 가능성이 크고 언론은 더욱 그럴 것이다. “차량 인도 날짜도 없는 상황에서 무책임한 예약 판매”, “배터리 등 기술적 불안 첩첩”, “팔수록 쌓이는 적자 감당할 수 있나”, “충전은 대체 어디서 하라는 말이냐”, “오너 취미 생활에 소비자들만 골탕 먹을 가능성” 등의 보도가 켜켜이 쌓일 것이다.

한국에서 광풍을 일으켰던 알파고 역시 비슷한 운명에 처했을 것이다. 만일 삼성전자가 돈도 벌어지지 않는 바둑기계 개발에 수년 동안 수조원의 돈을 쏟아붓고 있다면 입이 가벼운 논평가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삼성, 오너 취미 생활에 도박을 걸다”, “돈벌이 사업은 없고 오너 취미 생활 벌써 몇 년째” 등의 비판 기사들이 줄을 이었을지도 모른다. 수익은커녕 미래전망도 불투명한 구글카 역시 비슷한 반응을 불렀을 수 있다. “엄청난 돈을 쏟아부으며 벌써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고속도로서 쇼나 한다”는 비아냥이 홍수를 이룰 것이다.

말이 안되는 웃기는 이야기라고? 그럴 리가. 이건희 회장이 “앞으로는 자동차야말로 전자산업”이라며 자동차공장 설립신청서를 제출한 尹쩔?정부 당시 상공자원부나 청와대 반응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오너 취미 생활을 허가할 수 없다”, “재벌이 한 가지 사업만 해야지 왜 이것저것 다하려고 드나”는 반응이 여론을 덮었다. 삼성자동차를 불허했던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바로 김종인이었고, 그는 더욱 큰 목소리로 “삼성차 불가”를 외쳤다. 그가 지난 총선 과정에서 삼성 미래차 공장을 광주에 유치하겠다는 공약을 내놨으니 세상이 변한 것인가, 그의 생각이 변한 것인가. 아니라면 다만 선거철이었을 뿐인가.

외환위기 직후 빅딜에 떠밀려 삼성차를 법정관리에 넣게 됐을 때도 “오너 회장 취미 생활로 수조원을 날리게 됐다”는 비판이 언론을 도배질했다. 그러나 자동차산업은 곧 전자산업으로 바뀔 것이라는 이건희의 예측은 고스란히 현실이 됐다. ‘오너 취미생활’을 비판했던 그 어떤 사람도 자동차의 IT화에 대해 한마디 말이 없다. 뭐, 그들은 늘 그래왔으니까.

한국 기업의 혁신 능력에 의문을 갖는 논평가들이 많다. 그들은 입만 열면 퍼스트 무버를 주문하느라 바쁘다. 그러나 혁신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 속에서만 가능하다. 넘치는 경제민주화 법제들, 첩첩인 행정규제, 언론의 적대적 보도, 좌경적 반시장 정서, 반기업 법제 등 소위 ‘한국 이데올로기’는 작은 혁신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관료가 허가하지 않고는 혁신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 관료는 절대 혁신을 허용하지 않는다. 한국 이데올로기는 실로 물샐 틈이 없기가 조선 주자학을 방불케 한다.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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